[야고보의 복음 단상]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기다리기 전에 이미 기다리신 아버지. 가끔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이전에 이미 그리움이 되신 그분을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의 그림은, 왼손은 아버지의 손으로 오른손은 어머니의 손으로 표현되는 디테일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거의 눈이 멀어 초점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초점을 잃어버린 눈의 묘사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움으로 짓눌려 멀어버린 아버지의 눈...
우리가 다가가기 이전에, 아버지의 다가옴이 우리의 선행 이전에, 아버지의 용서가 있음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 지도 모릅니다.
불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지금의 저보다, 더 젊고 더 큰 열성으로 이곳에서 소임을 다했던 신부님들이 지금은 원로 사제로 있음을 떠올리면, 세월의 무상함을 저 또한 주님 앞에 서야 할 시간이 가까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정 중의 교회에서, 여정 중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 바탕에 우리가 다가가기 이전에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그분의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신학적 논쟁도, 그분의 사랑을 닮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자신과 신학적, 정치적으로 견해가 달라 답답함을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아무리 크게 내더라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오직 분노와 화만 남는다면, 세밀함을 추구하느라 정작 잃지 말아야 할 것,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가다리기 이전에 그리움이 된 사람을, 기다림 그 자체가 되어, 다가오시는 그분을 배우지 못하는 자리에 서있지 않기를 희망하는 아침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이전에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우리가 기다리기 이전에 우리를 기다리시는...
멀어버린 눈으로도 아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달려나간 아버지의 사랑만이 중요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