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복음 단상]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하느님의 백성임을 자랑스러워했던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이야하고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하느님의 백성이라 불리고는 싶으나 아들로 살고 싶지는 않았던 그들의 속내를 더 나아가 우리의 속내를 반영하는지도 모릅니다.
백성이라는 그리고 군중이라는 무리 속에 들어가서 혜택은 누리고 싶으나, 아들로 자녀로서의 책임은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음을 말하고 있는지도...
그것은 우리의 다른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로 고백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살지는 않습니다.
"설령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하신 하느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찬미하면서 그 사랑을 배우지는 않습니다.(이사야 49,15)
그것이 바로 그들의 아니, 우리의 약함입니다.
그것은 비난하는 우리의 손가락들이, 침을 튀기며 뱉어내는 배설과도 같은 우리의 말들이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사는 이들을 비난하고, 정치인을 비난하고, 성직자를 수도자를, 하느님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마저도 비난하는 그들 안에 우리가 있지는 않은 건지 늘 살피게 됩니다.
차라리 잘랐으면 더 좋았을지 모를 비난하는 그들의 손가락들...
잘 지나가다 아름답게 핀 꽃을 보고 짓밟아버리는, 다른 이가 정성껏 쌓아 올린 호의의 탑을 발로 차버리고 마는 지독히 삐뚤어진 우리네 마음들...
그게 어쩌면 인간의 약함이고 우리의 악함입니다.
그런 우리 가운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용서하신 그분이 계십니다.
그런 우리 가운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일을 하신 그분이 계십니다.
비난에도 손가락질에도 멈추지 않았던 그분의 사랑을 청하고 배워가는 아침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5,17)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