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복음 단상]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주일" 입니다. 우리는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는 사람일까? 주님의 자비가 필요한 사람일까?
어쩌면 입으로는 자비송을 노래하지만 실상의 삶에는 주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자비하신 주님보다, 자신의 분노를 대신 퍼부어줄 분노의 하느님을 더 찾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 구절과 시의 병행 구절처럼 닮아있는 복음의 다른 아름다운 구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어쩌면 제자들은 유다인들보다 주님이 더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자 했지만, 함께 하지 못했던 그들의 약함...
당신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겠노라 했지만 제자들 그 누구 하나 그분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그 어떤 용서의 말보다 더 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십니다.
처음 만남도 제자들이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불러주셨던 것처럼 다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잠겨있던 문처럼 제자들의 닫힌 마음에도 주님은 그들 가운데 서시며 말씀을 건네십니다.
제자들의 사랑은 식어도 죽음도 죽게 하지 못한 주님의 사랑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 "하느님의 자비"이며 "하느님의 힘"입니다.
미사중 사제가 건네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인사도 바로 주님의 그 사랑의 위로를 건네는 인사입니다.
자신이 버리고 떠난 주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길을 헤매던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들을 다시 찾고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못에 뚫린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베인 상처 안에도 변하지 않는 그분의 사랑을 가슴 가득 안고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독설을 퍼부으라고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비방하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가운데 계심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그러면 무슨 말로 하느님의 자비를 증거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말을 이웃에게 건네고 계십니까?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