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복음 단상]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마지막 날, 다시 살린다? 복음의 '마지막 날'을 '먼 후일'로 이해했다면, 복음을 너무나도 잘못 이해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해는 오해의 총합이다."
복음서 어디에서 예수님께서 먼 훗날 용서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주님에게 '마지막 날'은 먼 후일이 아니라 '끝까지'가 더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지금 용서하셨고 지금 생명의 빵이셨고, 지금 바둥거리며 사는 우리에게 위로이십니다.
그분에게 '마지막 날'은 '지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날'임을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고,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지금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먼 후일 여건이 좋아지면 주님을 사랑하겠다. 지금 주님을 따르지 않고 먼 후일 여건이 좋아지면 주님을 따르겠다.
계산이 많아 지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먼 후일 사랑할 거라고?...
아무리 양보해도 그것은 '적당히 사랑하다 적당히 빠지겠다'라는 말로 들립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결코 내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적당히 믿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복음은 묻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를 증언한 요한 복음사가의 첫 증언으로 단상을 마무리합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그분이 사셨던 '지금', '끝까지'를 우리도 배워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하루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