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복음 단상]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양과 목자의 비유를 듣게 되는 부활 제4주일을 교회는 착한 목자 주일 그리고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성소 주일로 보내게 됩니다.
언젠가 동기 신부님들과 이야기하다, 우리 때는 성소 지원자가 없어서 은퇴 못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저는 "성소 지원자도 없지만, 신자도 없을 수 있다."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성소 지원자가 감소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방증인지도 모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요한 10,27)
어쩌면 우리는 주님을 성가에서는 목자로 표현하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목자의 음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는 양"
너무 똑똑해서, 주님에게 묻는다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결론을 다 내려놓고 주님에게 동의를 구할 뿐인 지도 모릅니다.
이미 용서하지 못할 수많은 이유들을 모아 놓고는 "제가 용서할 수 있을까요?" 묻습니다.
차라리 "용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조언은 그리고 동의는 필요 없습니다." 가 더 진실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기에는 너무나도 똑똑한 양 그래서 목자마저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의 가르침도 주님의 가르침도 우리는 정말 필요로 할까? 복음 안에서 묻게 됩니다.
"주님 세상모르시네!"이리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제2독서인 베드로1서는 주님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그 약속의 은총보다 선을 행하는데도 고난을 겪는 그 자리는 싫은데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저는 아픈 곳이 없습니다. 저는 멀쩡합니다. 미움으로 병든 마음을 보지 못하고 욕심으로 병든 마음을 보지 않습니다.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 걷지 않는 그리스도인"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는 양" "녹지 않는 소금"
우리는 과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을까? 묻게 되는 거룩한 부르심 "성소주일"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요한 10,27)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