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복음 단상]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뿌니!"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 때 홀로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다들 그저 '죄 많은 여인'이라 '마귀 들렸다.' 냉소와 조소를 보낼 때 홀로 마리아의 눈물을 보시고 그 울음을 위로하시고, 죄 많은 여인이 아니라 '마리아'란 이름을 불러 주셨던 분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실제로도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도 그리고 죽음의 순간,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복음서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되는 몇 되지 않는 여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무덤에서나마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던 예수님을 느끼고자 이른 아침 무덤으로 달려가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마리아를 오늘 복음에서 만나게 됩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과, 주님의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이 묘하게 닮아 있음을 복음 안에서 읽게 됩니다.
주님의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마리아의 사랑은 무엇을 말하는가?
절망 가운데에도 희망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체성사 안에서 죄 중에 있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시는 부활하신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신비인 성체성사! 성체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자 정점입니다.
여전히 분노하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이야기하고, 무슨 특별한 징표를 지니고 있어야 벌을 피할 수 있다 생각하는 그들, 신앙을 마치 어떤 부적처럼 여기는 교회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안타깝기 그지없는 그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 33,9)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요한1서 4,18)
여러분은 절망 가운데에도 희망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인가요? 이웃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주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사람인가요?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은 주님의 죽음 앞에도, 주님을 찾기를 멈추지 않은 '마리아'입니다. 그렇게 죽음도 멈추게 하지 못한 그분의 사랑을 살아내는 사람만이 주님 부활의 참된 증인입니다.
주님, 오직 당신의 사랑만을 기억하도록, 심지어 당신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당신께서 여기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잊지 않을 은총을 청하고 기도합니다.
성체성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의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성사 안에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뿌니!"하며 주님을 불렀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