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야고보의 복음 단상] 2023년 3월 25일2023-03-26 09:55
작성자 Level 10

[야고보의 복음 단상]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천사가 떠나간 시간, 홀로 모든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 자신의 모든 이해를 넘어선 모든 일들을 받아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모님에게는 분명 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작이 주님의 탄생 예고 순간이었고, 그 완성은 바로 아들의 죽음을 품에 안게 되는 순간입니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도 않은 실은 비통함에 더 가깝고 비참함에 더 가까운 시간입니다.


인간의 위로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오직 하늘의 위로만을 청하게 되는 "주님의 죽음을 가슴에 안는" 가난한 자리가 바로 성모님의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쉬 간과하는 그 시간이 바로 성모님의 진면목을 묵상하게 되는 포인트입니다.


신앙도 어떤 면에서는 그와 같습니다.


주님의 탄생 예고도,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시작이고 주님의 죽음도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마침입니다.


나의 생각 안에 주님을 가두어 버릴 때, 믿음은 요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아픈 일들을 보며 나의 일이 아니라, 안도하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허망한 죽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들을 대학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잃게 된 아버지의 공허해진 눈 안에서, 그리고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미국이라는 땅에 정착해서 열심히 땀 흘리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안식에든 형제의 죽음 앞에서도 깊이 새기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의 호의가 죽는 그 자리에서도 호의를 다시 사는 일, 주님의 부재를 체험하면서도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일, 어쩌면 그 일들은 은총에 가깝고 결코 낭만적이지는 않은 일입니다.


"복되어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시편 84,13)

그 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우리가 너무 쉬 바치지만, 시리도록 아름답고, 깊이 아픈지도 모를 성모송으로 단상을 마무리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