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복음 단상]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요한 5,39-40)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오늘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은 어쩌면 듣기 거북스러울 만큼 직설적이고, 비판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자존감이 대단했던 그리고 율법에 충실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복음의 주님께서 너희가 아니라 너희가 혐오하고 비난하는 그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 말씀하셨던 것과도 비슷합니다.(마태 21,31)
하지만 주님의 이 직설적인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을 믿는 사람일까? 우리는 과연 주님을 아는 사람일까?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탄생 예고 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했던 성모님의 대답에서도 표현됩니다.(루카 1,34)
주님을 머리로는 알지만 받아들이지 못했던 복음의 많은 그들이 어쩌면 자주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렇게 성토합니다.
너의 모든 말과 행동... "거기에 어디 주님의 자비가 있고, 거기에 어디 주님의 용서가 있는가?"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속에서 타오르지 못했던 사랑의 불꽃,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의 가슴을 돌아보게 하고 실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리, 관계 맺지 않는 자리에 더 자주 서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동이 없어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까?
과연 자신을 내어주는 그분의 길을 생명의 길로 여기는지,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듯이, 주님을 따르는 행동 없는 믿음 또한 없다는 것,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머리가 아닌 행동으로 주님을 믿고 증언하는 사람, 그렇게 믿음을 살아내는 사람이 신앙에 더 가까운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 아버지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듯이 우리도 오늘 우리가 하는 일로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요한 5,36)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