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야고보의 복음 단상] 2023년 3월 16일2023-03-17 09:50
작성자 Level 10

[야고보의 복음 단상]


F3BE5734-DE71-441C-AD3B-302B3B526302.jpeg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루카 13,14)


모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흩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로하는 손이 있고

내치는 손이 있습니다.


제 서품 상본의 그림이기도 한, 아름다운 성화로 유명한 지그쾨더(Sieger Köder) 신부님의 물에 빠진 배드로를 손잡아 끌어내시는 손 그림에는 손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손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작게 묘사되고, 베드로의 손은 투박하고 거칠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베드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였기에 그리 묘사했을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아이가 고사리같이 작고 약한 손으로, 사람들을 끌어 안고, 기꺼이 자신의 과자 한 조각을 내미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는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내치는데 익숙한 것은 아닐까...


나는 나에게 불편한 사람, 내 마음에 탐탁지 않은 이를 내치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이해하고 보듬어 안고 함께 살아가길 기도하는 사람일까? 묻습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의 그들처럼 내치는데 익숙한지도 모릅니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주님을 두고도,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의심하고 비난한 그들처럼,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선한 의도도 자주 숨은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나 의심하고 믿지 않습니다.(루카 11,15)


그것은 오랜 경험에 의한 상처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사람들을 모아들이셨던 주님의 마음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산교구 신은근 바오로 신부님의 십자가의 길 제1처 -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에 대한 묵상 글로 단상을 마무리합니다.


'십자가의 길' 14처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어디입니까? 저에게는 12처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한때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지는 장면과 '용감한 여인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리는 장면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1처'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죄한 분께서 죄인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의롭고 선량하신 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는 모습이 마음을 눌렀습니다.


그분께서는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담담히 판결을 받아들이십니다.

삶의 억울함'을 인정하시는 모습입니다.

'인생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시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제1처의 예수님'께서는 억울함과 불공평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살면서 억울함을 당합니다.

때로는 모함도 받고 때로는 이용도 당합니다.

오해 때문에 멍들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처신하였습니까?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였습니까?

아니면 악쓰며 반항하였습니까?

결과야 어떻든 남은 것은 상처입니다.

이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억울함의 상처'가 십자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생각하면 가슴 떨리고 증오가 솟더라도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러면 은총이 함께합니다.


누군가 '오른뺨을 치더라도' 눈은 흘길지언정 참아 내게 하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