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야고보의 복음 단상] 2023년 4월 1일2023-04-01 13:09
작성자 Level 10

[야고보의 복음 단상]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보나 파스카(Bona pashcha) 우리가 흔히 부활에 건네는 인사, "복된 건너감" 으로 통상 이야기하는 인사.


죽음에서 생명으로,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신비.


파스카가 과연 축제일까?


죽음에서 건너간 이들, 죽음을 피한 이들에게는 축제일지 모르나 "그 건너감을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는 축제가 아니라 학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구약의 파스카 예식 안에서도, 백성의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에서 죽어간 양들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의 이면에는 수많은 인디언들의 애환과 눈물 그리고 죽음이 공존했던 것과도 닮아 있는지도...


한쪽은 개척이고 한쪽은 빼앗김입니다.

그 빛과 그림자를 우리는 쉬 간과합니다.


그럼에도 죽기까지 하느님의 백성을 모아들이셨던,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흩어진 백성을 하나로 모아들이신 주님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사람일까 묻게 됩니다.


파스카가 참으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건너감 가운데 함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픈 가슴을 품어내야 하는 것과도 같고, 부활이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그전에 홀로 죽어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딸로, 주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되새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미움에서 사랑으로, 오해에서 이해로, 내침에서 받아들임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무엇을 인내하는 사람인가요?


모든 죄인들을 자신의 죽음을 통해 모아들이신 그분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주님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선물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가볍지 않은 책임을 요구합니다.


어쩌면 오직 주님의 위로만이 유일한 위로인 가난한 사람들에게만이 주님의 파스카는 기쁨이고 축제로 남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인내하지 않는 자리,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리에 서 있지 않길 기도하는 하루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