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야고보의 복음 단상] 2023년 5월 7일2023-05-08 14:05
작성자 Level 10

[야고보의 복음 단상]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단상에 앞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전해드립니다.


어떤 미국인이 시카고의 유명한 목사의 설교들 듣기위해 교회에 갔습니다.


설교 중 갑자기 목사가 그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주 예수님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당신은 오늘 걷게 될 것입니다."


"전 중풍병자도 아니고 마비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부목사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권능으로 당신은 오늘 걷게 될 것입니다."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밖에 나왔을 때 그들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my car was gone.)


그래서 그는 걷게 되었습니다...ㅎ


"하느님은 나쁜 것을 통해서도 좋은 것을 이끌어 내신다."는 말은 그만큼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생명과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목숨과 하느님 나라와는 결이 다르곤 합니다.


주님을 따랐던 많은 이들의 삶이 세상의 눈에는 고단했던 것과도 닮아있습니다.


지상에서 목숨의 연장이 하느님의 나라는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의 주님은 나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하셨고 내가 줄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요한 14,27)


욕심을 채워가며 서로를 탓하며 혼자 편안한 자리가 있고 세상의 죄를 자신의 탓으로 여겼던 주님의 십자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는 언제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바로 그 십자가가 하느님의 힘이라고 서간에서 선포합니다. (1코린 1,23-24)


오늘 제2독서의 표현을 빌리면, 주님은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귀한 돌"입니다. (1코린 1,23-24)


만남이 소중한 것은 언젠가 그 끝이 있기 때문이고, 짧은 인생이 아름다운 것도 마지막 순간이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욕심을 찾아, 서로를 탓하며 죽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의 가르침 때문에, 주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십니까?


나의 하느님을 말하는 자신에게 우리 하느님을 알려 주신 분, 나의 주님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알려 주신 그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십니까?


그분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