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야고보의 복음 단상] 2023년 5월 16일2023-05-22 11:41
작성자 Level 10

[야고보의 복음 단상]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세상의 그릇된 생각", 다른 말로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평화와는 다른 주님의 길을 묻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의 바오로와 실라스가 주님을 찬양할 만한 상황이어서 주님을 찬양했을까?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도16,22)


그들의 옷은 찢김을 당했고, 모질게 매를 맞았고, 가장 깊은 감옥에 갇혔다라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


옷은 성경에서 직무를 상징합니다.

그들의 옷이 찢기고 버림받았다는 말은, 그들의 거룩한 복음 선포가 모욕을 당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도무지 하느님을 찬송함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찬송보다는 원망이 더 어울리는 순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복음에 따르면 "주님의 영"에 힘입어 그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죽음과도 같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갈라지고 울음과 같은 목소리로 '주님의 기도'를 읊조리며  온몸으로 우는 것도, 그 도움 없이는, 그 은총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모든 상황이 좋을 때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편할 때 사랑의 말, 위로의 말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과 사랑은 좋을 때가 아니라 나쁠 때 드러납니다.


그때 나는 무슨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가, 무슨 행동으로 그이를 대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 사랑의 깊이와 믿음의 진정성은 좋을 때가 아니라 어쩌면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바로 그 거칠고 투박한 순간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영광은 오직 그분의 십자가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를 가르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따라 길을...


바로 은총을 청하고 간구하는 하루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