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복음 단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는 십자가의 길 안에서 남겨질 당신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씀이고, 다시 돌아옴, 주님과 함께하는 부활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하느님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하는 말씀입니다.
많은 성인들이 하느님을 찬미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느님의 부재를 체험하는 "영적인 어둠의 밤"을 고백했습니다.
현대의 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렸던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자신의 편지글에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여러 어려움과 좌절 속에 있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도, 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서 위로받는 순간이 있고, 때로는 황폐함과 공허함 속에서 주님의 부재를 체험하는 위로받지 못하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반복됨을 이야기합니다.
군인 출신이었던 이냐시오 성인은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 안에서 악의 깃발 아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 서있는 병사가 되어야 한다." 말합니다.
그 길은 첫 번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주님을 찬미하는 길은 기도 없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찬미하기 위해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바로 그 이유로 제가 여기 있습니다." "Ad Sum (예, 여기 있습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순간에도 위로가 되는 사람, 위로가 되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의 성실함에 기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쉬 식어도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과 기도로 단상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요한 16,20)
"오직 그리스도 주님 안에서 나의 고통은 사랑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아멘 |